유머를 이용한 훈육
아이들은 언제든지 우리 어른들의 화를 돋울 수 있다. 때로는 몹시 격한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고의일 때도 있고 무심코 그럴 때도 있다. 대부분은 분노에 대처하는 법을 자신의 부모로부터 배운다. 그래서 화가 치밀면 따귀를 때리는 사람도 있고 절대로 때리지 않고 대신 치욕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은 부모에게서 유머를 통한 훈육을 받은 사람이 아닐까? 낙천적인 마음을 가지고 훈육을 해나가면 다음의 세 가지 중요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첫째, 우리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이겨낼 수 있다. 둘째, 아이들 역시 자기감정을 효과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셋째, 아이들이 커서 부모가 되었을 때 자기 자녀에게 사용할 수 있는 건전한 부모 노릇의 본보기를 제시할 수 있다. 아이들의 나쁜 행동은 수명이 짧지만 그 행동에 대처하는 우리의 방식은 그 결과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의 화를 돋우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공공장소에서 떼를 쓰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부모를 당혹스럽게 만들 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까지 화나게 한다. 심리학자 조셉 미첼리는 아들과 쇼핑을 갈 때 표지판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는 한 창조적인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아이의 떼를 양해 바랍니다', '위험 - 감정 수리 중'이라고 쓴 표지판이었다. 이 표지판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웃게 하였고 아이의 떼에 쏟아질 수 있는 관심을 분산시켰다. 결국 아이는 자기 행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원한 것은 관심의 집중이었지 유머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유머를 통한 훈육은 사실과 어긋나는 기질을 사용하거나 (갈퀴를 사용해 방 치우기), 그리고 모순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상상력과 창조력을 이용해 사고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유머를 통한 훈육이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개선할 수 있는지 자녀 양육뿐 아니라 학교 교육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오랫동안 이른바 '교과과정 장애아동'을 위한 학교를 운영해 왔다. 이 아이들은 평균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학업 성적이 평균 이하인 아동들이었다. 상당수가 학교의 요구와 자신의 학습 태도가 맞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이었다. 대학원생들이 직접 아이들을 맡아 개인교습을 해주었고 학교의 교과과정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가르쳐주었다. 일이 년 후에 대부분의 아이가 다시 공립학교로 돌아가 자기 능력 수준에 맞게 학습을 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었다.
이 가운데 론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론은 똑똑했지만 화를 잘 냈다. 어떤 아이가 론이 주머니칼로 만든 조각품을 부수자 녀석은 의자를 집어들고 자기 기분을 상하게 한 친구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얼른 끼어들어 녀석과 의자를 한꺼번에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춤이나 출래요? 론은 어쩔 수 없이 웃어버렸고 이제 그 화가 자기를 붙들고 공격을 못하게 만든 내게로 향해 있었다. 나는 의자를 내려놓고 녀석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화를 내는 건 괜찮아. 하지만 화났다는 걸 표현하려면 말로 해야 해. 물건으로 때리거나 해서는 안 된다." 며칠 후에 나는 론의 책상 옆을 지나가다 멈춰서 이렇게 말했다. "론, 정말 기쁜 소식이 있단다. 선생님이 치과에 가게 되었어." 녀석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꾸했다. "충치가 천 개쯤 있으면 좋겠네요." 론은 이제 말로 화를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일반적인 훈육은 제한을 두려는 부모들의 요구에서 생겨난다. 언제나 문제는 텔레비전을 너무 자주 본다거나 불량식품을 지나치게 먹는다거나 컴퓨터 게임을 너무 오래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아이들은 늘 자기를 위한 최선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부모가 필요한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아이들도 제한을 원하고 필요로 한다. 통제가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제한을 둬서 일종의 안심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규칙과 제한을 아이와 함께 만드는 게 한 가지 좋은 전략이 되겠다. 또 규칙을 깨뜨렸을 때의 대처방안도 함께 만들 수 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유머를 도입하고 싶다면 벌칙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시 집안에 진흙을 묻혀서 들어오면 일주일 동안 진흙투성이 옷을 입어야 한다." "또 침대에 이불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나를 몹시 웃게 만들어줄 방법을 하나 찾아와야 한다."
유머를 도입해 제한을 정하려면 아이들의 행동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아이가 집안에 진흙을 묻혀온다고 해서, 침대 정리를 안한다고 해서, 이 세상이 끝장나지는 않는다. 문제는 가끔 부모들이 이런 문제를 원래보다 훨씬 크게 부풀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아이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면 주위가 온통 나쁜 감정으로 가득해지고 만다.
반면 제한을 둘 때 낙천적인 마음을 가지면 아이들도 더 편안한 마음으로 규칙을 배워나갈 수 있다. 유머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기억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내 자식은 다른 모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이며 그럼에도 부모를 화나게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유머를 훈육의 기술로 사용하면 놀이, 사랑, 일을 통합하는 양육이 가능해진다. 농담이나 유머는 놀이의 영역이고 유머를 사용하는 이유인 깊은 애정은 사랑의 영역이다. 또 그 결과 생기는 사회적인 학습은 일의 영역이다. 무엇보다 훈육을 위해 유머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효과적이면서 동시에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놀이의 힘, 2008, 240-246p/ 데이빗 엘킨드